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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새해를 여는 로맨틱 코미디는 tvN <로맨스는 별책부록>입니다. 이나영과 연하남 이종석의 만남도 신선하고 출판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오피스 드라마란 점도 기대감을 높입니다. 이나영의 무려 9년만의 복귀작이자 이종석 입대 전 마지막 작품입니다.



강단이(이나영)와 차은호(이종석)은 어린 시절부터 친남매처럼 또 친구처럼 의지하며 지내온 사이입니다. 중3 소녀였던 단이가 초등학교 축구부 어린이였던 은호를 교통사고에서 구해주며 인연을 맺습니다. 누나가 만화책을 잘 볼 수 있도록 책받침대 역할을 하는 어린 은호 너무 귀엽죠?



단이는 이후 출판사 지원서에도 그 시절 일면부지의 소년을 구해 준 일을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로 꼽습니다. 소중한 남동생이 생겼다고도 언급합니다. 단이는 1년 동안 병원 생활을 하게되고 은호는 학교 끝나면 늘 단이에게로 와 말동무이자 꼬봉(드라마 대사 ㅎㅎ) 역할을 충실히 해냅니다. 



어린 은호는 책과는 담을 쌓고 지냈는데 단이를 만나며 독서에 눈을 뜹니다. 이후 은호가 유명 작가가 되었으니 여러모로 큰 영향을 준 사람입니다. 



현재의 은호는 정말 잘 나가는 작가이자 교수, 최연소 편집장을 겸임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미 인터넷 소설 연재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는 지은이 프로필입니다.



연세대에서 촬영한 로맨스는 별책부록. 인기 많은 젊은 교수로 그려집니다. 



오래 전 2007년 9월의 어느 날. 웨딩드레스를 입은 단이와 수트를 갖춰입은 은호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두 사람의 결혼은 아니고 단이의 결혼식에 은호는 피아노 연주를 하기로 했습니다. 결혼식 당일 단이는 도망칩니다. 미래의 남편에게 확신이 없던 것일까요? 그런 단이에게 든든한 동생 은호는 말합니다.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말해,

어디든 데려다줄게



십여 년이 흘러 단이는 이 날을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으로 떠올립니다. 만약 그날 은호가 가자는 곳으로 어딘가, 다른 먼 나라로 가버렸다면, 지금과는 다른 내가 되었을 거라 후회하면서 말입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듯이. 단이는 예정대로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고 행복했던 순간도 물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남편은 바람을 피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사업이 망한 후 단이 몰래 은호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않기도 합니다. 최악이죠. 결혼 생활이 끝난 후 단이는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지 못한 과거를 떠올립니다. 다른 사람은 다 웃고 떠드는 명절에 혼자 시댁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며 허겁지겁 끼니를 떼우는 단이, 가족에게 좋은 걸 다 양보하는 단이. 스스로를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합니다. 



 

단이야 울지마

아무리 울어도 네 남편 안 돌아와

넌 앞으로 계속 혼자야

 


이 장면은 현재의 단이가 과거의 단이를 제3자 입장에서 바라보며 스스로 치유하는 모습입니다. 남편과 이혼하고 어린 딸은 단기 유학을 떠나고 홀로 남은 단이. 어두운 방에서 플래시를 터뜨려 지난 날 자신을 감싸안아줍니다. 가끔 그런 날이 있지요. 지금보다 어렸던 나, 방향도 모른 채 그저 열심히 살던 나를 타임머신을 타고 가 안아주고 싶은 순간. 



결국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도 나고 매 순간 함께하는 이도 나이기에 셀프 토닥임은 정말 중요합니다. 과거와 제대로 이별할 줄 알아야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슬퍼할 수만은 없으니까요. 인생은 언제나 ing이고 이 한 모퉁이만 돌아나가면 또 어떤 환상적인 나날이 펼쳐질지 모릅니다. 매 순간 조금씩 더 좋아진다는 희망을 갖고 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욕심도 능력이듯이 긍정적인 사고방식 또한 능력입니다.



무엇보다 누나를 배려하지 않았다

세상에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겨우 저런 남자를 사랑한다고 말하다니



안타까운 건 은호는 이미 단이의 남편이 그리 좋지 못한 남자임을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은호가 단이보다 5살 어린 동생이기에 선뜻 조언하기가 어려웠을 테지요. 고등학생이던 은호의 과외 선생님으로 대학생이던 단이가 자신의 남자친구를 소개시켜 주는 자리. 은호 표정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자가 결혼을 앞두고 예비 남편과 함께 인사드리러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선풍기를 자신에게만 고정하는 남자를 보고 속으로 제자를 걱정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몇년 후 둘 사이가 끝났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은호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서 내 인생 구원한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난 안 믿어요

난 내 힘으로 살고 싶어요

 

결혼 전 능력있는 광고 기획자였지만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일을 그만 둔 단이. 가정 주부로 사는 동안 세상은 변했고 경력단절인 단이가 설 곳은 어디에도 없어 보입니다. 결혼, 출산으로 경력단절의 아픔을 지닌 여성들의 삶을 그린 점에서 지난 해 방송한 MBC 내 뒤의 테리우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드라마에 대해 제가 쓴 리뷰 링크합니다. (내 뒤의 테리우스 리뷰 바로가기)



동화책 종이 봉지 공주 (원제: The Paper Bag Princess)가 생각납니다. 이제까지 동화는 '예쁜 공주님이 어려움을 꿋꿋하게 이겨내면 멋진 왕자가 짜잔 하고 나타나 Happily Ever After 평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였다면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적극적으로 내 삶을 개척하고 자본주의 사회 생존권인 경제력을 사수하려는 여성들의 노력이 그려질 시간입니다. 강단이 캐릭터가 출판사에 입사한 후 커리어를 쌓아가는 성장기를 지켜보고 싶습니다. 



 

소설 쓰냐?

내가 모르는 일이

누나한테 있었다는 게 말이 돼?


1년 전 이혼했다는 단이의 말을 믿지 않는 은호. 난 누나에 대해 모르는 일이 없다는 자신감이 드러납니다. 이런 사이는 흔치 않죠. 어린 시절부터 둘도 없는 친구로 자라 서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채 맴도는 영화 러브 로지(Love Rosie)와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은호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단이 누나를 사랑하고 있었음이 1회부터 드러납니다. 단지 본인이 자각하지 못했거나 자각했더라도 누나 옆에는 이미 누군가 있었기에 고백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핸드폰에 각각 '누나'와 '동생'으로 저장한 두 사람. 로맨스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후 어떻게 이름이 바뀔지도 궁금합니다. 



 

사랑을 몰라

그런 게 있다고 믿지도 않아

 

내가 사랑을 믿지 않는 건

단이 누나 때문이다



여자친구한테 차여도 별 생각이 없는 은호. 연애는 하지만 사랑은 하지 않는 은호. 사랑을 믿지 않는 이유가 단이 누나 때문이라는 은호. 



오랜 시간 함께한 둘 사이에는,

전하려 애쓰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

그저 마주보고 웃었을 뿐인데

밀려드는 서로의 감정이 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드라마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주준영(송혜교)이 가정 불화로 정말 힘든 하루를 보낸 날이었습니다. 준영은 방송국 동료들과 회식 자리에서 웃고 떠들며 슬픔을 감춥니다. 동료 중 어느 누구도 준영이 지금 애쓰고 있다는 걸 모릅니다. 하지만 남자친구인 정지오(현빈)만 그 감정을 알아차립니다. 마음속으로 보내는 메시지. '준영아 너 지금 우니?' 


단이와 은호도 그런 사이가 아닐까요. 오랜 시간이 켜켜이 쌓아 만든 애틋함.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이런 상대가 있다면 못 만날 거 같아요. ㅋㅋ 진심. 끼어들 틈이 없는 느낌? 이런 사람들은 엄한 사람들에게 상처주지 말고 둘이 만나고 결혼해야 해요. ㅎㅎ 법으로 정해놔야 해. 누구도 다른 사람들 사랑에 조연이나 엑스트라로 스쳐 지나가길 바라지 않거든요. 내가 주인공이고 싶지. 



웃으면 그렇게 예쁜데.

사실 웃지 않아도 아름답다.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과 톡 터지는 감탄사,

생동감 넘치는 몸짓에 눈을 뗄 수 없다


은호가 단이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만 되뇌이는 말. 그들이 사는 세상 OST였던 성시경 연연과 잘 어울리는 문장입니다. 


얼마나 맑은 사람인데
눈물이 나도록 눈이 부신데



드라마 흐름 상 둘이 연인이 될텐데 그 결말이 해피엔딩이든 아니든, 단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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