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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 사람을 위해서 목숨까지 기꺼이 내어줄 정도의 마음? 곁에 있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수하는 열정? 2013년 12월에 방영한 문소리, 이세영, 서강준 주연의 단막극 <하늘재 살인사건>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제 헤어지지 말아요


남자는 과연 누구에게 영원한 사랑의 말을 속삭이는 걸까? 놀랍게도 서강준(윤하 역)과 문소리(정분 역)는 사위와 장모다. 그리고 이 곳은 서강준과 문소리의 딸 이세영(미수 역)의 결혼식장이다. 이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걸까?



이전에는 배우 서강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우연히 JTBC 드라마 <제3의 매력>을 보고 '얼굴천재'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잘생긴건 물론이고 연기도 참 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눈빛 연기와 대사 전달력이 좋다. <제3의 매력>에서 연기한 온준영 역에 관심이 생기고 다른 작품도 찾아보게 됐다. 그 중 <하늘재 살인사건>이 눈에 띄었다. 2013년, 서강준이 21살 신인 시절 찍은 단막극이다. 








극 중에서 서강준은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해 스무살 나이에 고3인 학생으로 나온다. 전쟁으로 인한 소용돌이에 그 또한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선생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진주 사범학교에 진학하고 문소리의 딸 이세영과 같은 반 학생으로 만난다.



문소리와 서강준의 인연은 훨씬 전에 시작됐다. 전쟁으로 부모님, 남편, 조카를 다 잃은 문소리와 부모님을 여의고 어린 동생을 돌보는 서강준. 곱게 자라 장사 수완이 없는 문소리. 그런 문소리가 판매하는 음식을 도둑질하는 서강준. 악연으로 만난듯 했으나 이내 서로를 의지하며 어리지만 능청스러운 윤하가 정분의 장사를 돕는다. 


너만 배고파?

너만 그래?

부모님, 남편, 조카 다 잃었어

 

나 어른 아니야

나이만 먹었지

이 나이 먹도록 집안에서 곱게

남이 해주는 밥만 받아먹고 산 게 무슨 어른


정분의 대사는 '어른'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이는 누구나 먹기 마련이고 스무살이 되면 세상에서 '넌 어른이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 '어른'의 의미는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다. 정분이 말하는 어른이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독립성을 갖춘 사람일 것이다.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 결혼을 하고 한 아이(미수)의 엄마가 될 때까지 그저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아 온 정분. 그런 정분에게 전쟁이 남긴 상처는 너무 가혹했다. 








전쟁이라는 풍파에 휩쓸려 아직 미처 어른으로 자라지 못한 사람들에게 많은 짐이 주어진 현실. 정분은 여동생과 어린 딸을 책임지는 가장이지만 강하지 않다. 윤하 역시 가장이지만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았다. 그렇게 함께 장사를 하던 중 정분이 말도 없이 나오지 않는다. 어린 소년 윤하는 말한다. 


어디 계세요

이렇게 저만 남겨두고



주인공이 총 세 번 만난다는 설정이 <제3의 매력>과 비슷하다. 제3의 매력에서 영재(이솜)와 준영(서강준)은 20살, 27살, 32살에 만난다. <하늘재 살인사건>에서는 윤하의 어린시절, 스무 살 시절, 그리고 이후에 또 한 번 장모와 사위로 마주한다. <제3의 매력> 준영은 '세상에는 세 종류의 여자가 있다. 꼭 만나야만 하는 여자, 만나지 않아도 상관없는 여자, 그리고 절대 만나서는 안 되는 여자.'라고 말한다. <하늘재 살인사건>에서 정분은 어떤 존재였을까? 아마도 사위의 모습을 하고라도 옆에 있고 싶은 '꼭 만나야만 하는 여자'가 아니였을까.




스무 살 윤하로 재회한 두 사람. 윤하는 정분에게 소설 '첫사랑'을 건넨다. 윤하가 책을 읽고 학교를 다시 다니는 데에는 정분의 힘이 컸다. 소년 윤하에게 정분은 이렇게 말했다.


 

전쟁 전에도 넌 살았고

전쟁 중에도 살고있고

전쟁 후에도 넌 살거야



전쟁이 나기 전 꿈이 선생님이었던 윤하를 응원하며 건넨 말이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도 책을 놓지 않던 정분을 기억하는 윤하. 아무리 삶이 힘들어도 인생은 계속 ing 현재 진행형이라는 교훈을 남긴 장면이다. 








 

그 때 왜 말도 없이 안 나오셨어요

되게 서운했는데


전 다 기억하는데



모두 윤하가 정분에게 한 말이다. 어린애 같은 투정 섞인 말, 그리고 '당신에 대한 건 모두 기억해요'라는 수줍은 고백까지. 성시경의 노래이자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OST인 연연이 떠오른다.


너를 보면서 하는 모든 말
사랑한단 뜻이라
쉬운 인사말 그 한마디도
내겐 어려운 거야




 그 때 저한테 해주신 말씀 듣고

공부 다시 시작 했어요


교회 목사님 도움으로 학교도 다시 갔고요

감사합니다



나는 이미 단순한 어린 소년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남자였다


나는 그 날부터 나의 열정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부터 나의 고통도 시작되었다고 

덧붙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첫사랑' 책에 밑줄을 그어 사랑 고백을 한 윤하. 정분의 딸 미수가 윤하와 1살 차이인 것으로 보아 둘의 나이 차이가 꽤 있다. 하지만 윤하 나이가 스물이 넘었고 정분 또한 전쟁 중에 남편과 사별했으니 법적인 문제는 없는 사이다. 윤하는 사랑에 단단히 빠져버린, 아니 사랑에 미쳐버린 연하남이다. 이 절절한 고백을 받은 정분의 마음은 어땠을까?



운명의 장난인지 정분의 딸 미수가 윤하를 좋아한다. 윤하가 전학 온 날부터 호감을 느꼈던 미수는 고백까지 한다. 마음이 가는 연하남과 사랑하는 딸 아이 사이에서 엄마 정분의 선택은? 윤하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이사를 가는 결말을 맺는다. 엄마 정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성인이 된 윤하는 또 한 번 외친다.


어디 계세요

이렇게 저만 남겨두고





 

혼자 힘드셨겠어요

 

괜찮아요

어른이 되도 힘든 건 힘든거더라구요



정분에게는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을 놓아버린 여동생 인분(신동미)이 있다. 여동생과 딸을 위해 군복 염색, 삯바느질로 악착같이 살아왔다. 하지만 초반에 나왔듯이 정분은 어른이지만 마음 속에는 아직 덜 자란 모습이 있는 인물이다. 강단 있고 씩씩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 정분의 마음을 윤하만이 알아준다. '사랑'이라고 설명할 수 밖에 없는 감정이다. 




You are the one(One) 어둠 속을 걷고 있을 때

넌 나의 구원(One) 내게 손을 건네준 그대

You are the One 넌 나의 구원


정분과 윤하를 보며 에픽하이의 노래 One이 생각났다. 어둠 속을 걷는 것과처럼 암담한 상황에서 서로에게 '구원'과도 같은 존재였을 두 사람. 하지만 어른인 우리는 알고 있다. 타인을 구원으로 여기는 건 그만큼 위험요소가 많다는 걸. 다른 사람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꼭 변심이 아니라 하더라도 인간이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멀어질 수도 있고 영영 남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웹툰 여중생A에서도 말했지 않은가. 변하지 않는 자신만의 낙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렇다고 이 두 사람을 탓하는 건 아니다. 사랑임을 느꼈을 때, 또 상대도 나와 같은 마음임을 알았을 때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을테니. 하지만 너무 절절한 사랑은 때론 주위 사람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행동하기 십상이고 상처받는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에서 진짜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글쎄. 적당히 좋하하고 적당히 연애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서강준은 <제3의 매력>에서 온준영으로 <하늘재 살인사건>의 윤하로 그야말로 사랑, 그것도 첫사랑에 목숨거는 순정남으로 나온다. 가상의 인물이기에 이들이 멋있게 보일수도 있다. 현실이었으면 4년을 사귀고 결혼까지 약속한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이혼하고 돌아온 첫사랑에 휘둘리는 똥차 온준영(제3의 매력)으로, 첫사랑의 딸과 결혼해 사위의 모습으로 평생 옆을 지키려 하는 비상식적 인물 윤하(하늘재 살인사건)로 기억할 수도 있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의미는 드라마, 영화 속 주인공 뿐만 아니라 조연 배우에게도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음을 뜻할지도 모른다. 제3의 매력의 김윤혜(민세은 역)와 하늘재 살인사건의 이세영(미수 역)이 그러하다. 어른이 되면 알게 된다. 인생에서 우리는 매 순간 주인공일 수 없음을. 때로는 조연일수도, 스쳐지나가는 엑스트라일수도 있다는 걸.



윤하의 고백에 도망치듯 떠나 살아온 정분. 시간이 흘러 딸 미수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소개하는 자리에서 윤하를 다시 만난다. 이들의 세 번째 만남이다. 



 

앞으로 미수가 모르는 일은

안 해줬으면 좋겠네


사위가 된 윤하는 정분에게 선물을 건넨다. 자신의 아내이자 정분의 딸인 미수에게는 비밀이라고 하면서. 물론 엄마인 정분은 그 마음을 단칼에 거절하며 선물도 뿌리친다. 윤하는 정분에게 한 남자이고 싶어 사위가 된 것이다. 



여동생이 건강하던 시절 추억을 말하는 정분. 정분은 이 이야기를 하며 그리움에 눈물을 흘린다. 



 

이런 선물은 괜찮죠?

비슷해요?


고마워


그리고 윤하의 선물. 정분이 어린 시절 뛰놀던 장소를 똑같이 만들어 놓는다. 운명의 장난이어서 그렇지 어찌 이런 남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얼굴도 키도 서강준인데. ㅎㅎ 



정분과 윤하, 그리고 미수. 이 세 사람은 어떤 결말을 맺을까? 사랑을 놓칠 수 없는 연하남 윤하와 그 사랑을 뿌리치려 노력하는 정분. 그리고 희생양 미수.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연하남이 등장하는 부분에서 소설 원작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를 떠올리게 하는 단막극. 한 편의 문학책을 읽는 것처럼 몰입해서 본 드라마다. 단 1회지만 여운이 남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직접 감상하길 추천한다. 


<더 리더 The Reader: 책 읽어주는 남자> 리뷰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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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페스티벌은

POOQ (푹) 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이번 포스트에 나온

<하늘재 살인사건>은

9회 2013. 12. 5 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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